[제주 백패킹 5일차 금릉해수욕장]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다.

아침에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바람은 여전히 강하게 불었지만, 오후쯤이면 약해질 것이다. 서귀포에서 하룻밤 편안하게 쉰 숙소를 나왔다. 202번 버스를 타러 갔다. 오늘은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금릉해변 야영장으로 갈 생각이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버스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2시간을 이동하여 금릉해변에 도착했다.

금릉해변의 바다는 3월의 파도로 가득했다. 해변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고운 모래 입자가 바람에 흩날렸다. 야영장이 조금 변했다. 작년 6, 이곳에서 야영했었다. 그 당시 야영장을 정비한다는 현수막이 있었다. 오늘 와서 보니 야영장이라고 쓴 안내판을 제외하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해안가에 방풍림으로 워싱턴 야자나무를 심었을 뿐이다. 여전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인적없는 텐트는 곳곳에 많았다. 자주 야영하던 장소에 텐트를 쳤다. 라디오를 틀어놓고 물을 끓였다. 커피는 이곳에서 마셔야 제대로 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30분 정도 숙면을 했다.

해변이 바라다보이는 야영지에서 낮잠을 잔 것은 오랜만이었다. 에코백을 어깨에 걸쳐 메고 길을 나섰다. 이곳에서 야영할 때마다 한림까지 걸어서 다녀왔었다. 오늘도 주변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향나무와 대웅전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월계사를 만났다. 안 가본 길을 걸을 때마다 약간의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한림 하나로마트에 도착했다.

특별히 살 것은 없었으나 걷다가 보이기에 그냥 들어갔다. 진열상품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둘러봤다. 견물생심이라고 캔맥주와 봉지라면을 샀다. 낱개라면은 이곳에서만 팔았다. 컵라면은 편리하지만, 쓰레기가 너무 많이 발생한다.

이른 저녁을 먹었다.

한림시장의 풍년 순대국밥에서 내장국밥을 먹었다. 제주도지사 원희룡과 가수 이정이 다녀간 곳이었다. 12년 전, 올레길을 걸었을 때 나도 이곳에서 국밥을 먹었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음식 맛은 변함없이 좋았지만, 청결은 아쉬웠다. 주변 정리가 안 되어서 산만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금릉 야영장까지 또 걸었다.

왼쪽으로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도로변 맛집에는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나는 관심이 없는 척 무심히 그들을 지나쳤다. 낮보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협재해변에 들어선 순간 흰 거품이 부풀어 오르는 파도를 보았다. 텐트로 돌아와 라디오를 켰다. 아직 오후 5시였다.

 

 

석양은 없었다.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왔다. 틀림없이 해는 바다 저쪽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낮에 있던 몇몇 사람조차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바람 때문에 더는 밖에 머물 수가 없었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을 했다. 한 꺼풀 덧씌워진 나는 비로소 따뜻함을 느꼈다.

알코올이 온몸에 퍼졌다.

텐트에는 맥주와 포도주가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신 후 포도주를 마셨다. 물론 물로 입안을 헹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드디어 포도주 마개를 열었다. 코로 향기를 맡고 한 모금 가득 입안에 담았다. ‘이 가격에 이런 맛이 나다니.’ 자꾸 마시고 싶은 맛이었다. 시중에서 구매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과 어둠은 경쟁이라도 하듯 점점 거세지고 주위는 암흑으로 변해갔다.

 

 

[제주 백패킹 4일차 올레 휴]

 

술기운에 잠이 들었다.

새벽엔 비까지 내렸다. 바람은 밤보다 더 강하게 불어왔다. 동트기 전 일어나 고민을 시작했다. 오늘 어디로 갈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하룻밤 더 야영할 것인가? 결정하기 전에 커피를 마셨다. 따뜻한 온기가 서서히 온몸에 퍼졌다. 비 때문에 배낭 꾸리기가 쉽지 않겠지만 여기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사전 투표를 했다.

배낭을 메고 화순리 정류장으로 향했다. 아침 공기는 새벽보다 더 신선하게 느껴졌다. 사전 투표 현수막을 보고 안덕면사무소까지 걸어갔다. 1.5km의 오르막을 배낭을 메고 걸었다. 사전 투표로 인해 예정에 없던 왕복 3km를 더 걷게 되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길가에 핀 매화를 보고 이제는 봄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사전 투표를 마치고 다시 언덕을 내려왔다. 안덕 하나로마트에서 포도주와 골뱅이, 파 등을 샀다. 그 이상은 배낭을 넣을 수 없었다. 오늘 야영지에 대한 부푼 희망을 간직한 체 202번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1번 버스로 환승 후 동쪽으로 향했다.

시흥리에서 하차했다.

이동시간만 2시간이 걸렸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농로를 따라 뚜벅뚜벅 오름을 향해 걸어갔다. 경사진 오름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쉼 없이 올라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이마와 등의 땀을 순식간에 식혀주었다. 전망대에서 지미봉, 종달리, 우도, 성산항, 성산 일출봉 등을 감상했다. 경치 한번 끝내주네!

 

 

오름 야영을 포기했다.

울진, 강릉, 동해의 산불로 민감한 시기에 오름에서 야영은 할 수 없었다. 아쉬움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주변 경치를 다시 한번 눈에 가득 담았다. 오름을 내려와 종달리를 거쳐 해변까지 걸어갔다. 해안가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더욱 사나워졌다.

내 의지에 상관없이 발이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름을 오르내렸는데 바람까지 나를 막아섰다. 무거운 배낭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꿋꿋이 그냥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이런 고생도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센 바람과 높은 파도를 비웃듯 종달 해변은 고요했다. 서둘러 텐트를 치려고 배낭을 벗었다.

 

 

일기예보를 검색하지 않았다.

서둘러 휴대전화로 일기예보를 검색했다. 일요일까지 제주 전 해안지역에 강풍 주의보가 발령되어 있었다. 이런 날은 해안가에서 야영할 수 없었다. 날은 이미 저물고 있었다. 아고다 앱으로 서귀포에 숙소를 예약했다. 다시 2시간을 버스를 타고 서귀포로 갔다. 나흘 만에 샤워했고 빨래까지 했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 결국 제자리였다.

 

[제주 백패킹 3일차 화순금모래해수욕장]

 

밤은 추웠다.

한낮의 따뜻함은 어둠이 가져가 버렸다. 물론 불량 핫팩이 문제였지만 숲은 내 생각보다 더 추웠다. 보온 옷(우모복)과 보온 신발(다운 슈즈)로 완전무장하고도 침낭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보니 아침이 밝았다. 어둠이 떠난 순간 나는 잃어버렸던 힘을 되찾기 시작했다.

아침 명상을 했다.

화장실에 뜨거운 물이 나왔다. 이런 호사가 다 있었다. 용모를 단정히 한 후 휴양림 내곽을 산책했다. 텐트로 돌아와 커피와 크런치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텐트 옆 빈 데크 공간에서 반가부좌를 했다. 아침마다 하는 20분 명상을 붉은오름에서 했다. 내가 늘 꿈꾸었던 모습이었다.

오늘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안개가 숲을 조금씩 점령하고 있다. 예정보다 일찍 휴양림을 나서야 할 것 같다.

 

 

30분을 기다렸다.

버스가 늦게 온 게 아니라 내가 일찍 나온 것이었다. 선택은 할 수 없었다. 231번 버스를 타야 했다. 버스 안이 따뜻했다. 버스 안에서 다음 야영지를 고민했다. 일단 종점까지 가기로 했다.

교통카드가 사라졌다.

종점에 왔는데 하차를 못 했다. 기사님께 말씀드리고 좌석 수색에 들어갔다. 교통카드는 의자와 등받이 틈으로 떨어져 있었다. 1분 만에 다시 교통카드를 찾았다.

환승을 했다.

서귀포 () 터미널에서 202번 버스를 탔다. 오늘의 야영지는 화순 금모래해변으로 정했다. 야영지에서 산방산을 조망할 수 있다. 안덕계곡을 지나 화순리에서 하차했다. 마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12
년 전 걸어서 이곳을 지나갔었다. 무더운 여름날 해변에서 해병대가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했다. 야영장은 유료지만 비수기엔 그냥 사용할 수 있는 데크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도 다른 야영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랜 기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텐트가 흉물처럼 보였다. 야영장 앞쪽 모래 해변은 공사 중이라 온종일 소음이 컸다.

텐트를 쳤다.

그 많던 금모래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올레길을 걷지 않았다. 나만의 추억이 있는 길을 다시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듯 이곳도 많이 변했다. 해안과 인접한 길을 따라 산방산까지 걸어갔다. 아침과 달리 따뜻해진 날씨가 반갑지 않게 느껴졌다.

마트에 갔다.

산방산에서 도로를 따라 안덕 하나로마트까지 걸었다. , 맥주, 포도주, 즉석밥, 라면, 김치, 고기, 배추를 샀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위해 내가 들고 갈 수 있는 양만큼 샀다. 에코백에 다 안 들어가 결국 물은 손으로 들고 야영지로 갔다. 마을 길에 있는 팽나무 한그루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가 저물고 나니 추워졌다.

해안가라 그런지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이런 날에는 김치찌개가 최고였다. 냄비에 고기, 김치를 넣고 물을 부어 끓였다. 어느 정도 끓었을 때 소금으로 간을 했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냄비를 보니 군침이 흘렀다. 소주 대신 선택한 포도주가 김치찌개와 궁합이 잘 맞았다.

 

[제주 백패킹 2일차 붉은오름 자연휴양림]

 

새벽 450분에 잠에서 깼다.

추워서가 아니라 오줌이 마려웠다. 눈을 뜨고 보니 전혀 춥지 않고 몸에 온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보니 밖의 쌀쌀함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야영할 때 발이 시린 것을 가장 싫어한다. 이번 제주 백패킹에 보온신발을 가져온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커피를 마셨다.

카누가 아닌 맥심을 선택했다. 자고 일어나니 달곰함이 그리워졌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은 후에 빗, 수건, 칫솔, 치약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방금 청소를 마친 듯 한결 깨끗한 화장실이 좋았다. 거울을 보니 아직은 몰골이 괜찮아 보였다. 겨우 하룻밤이었으니까.

서우봉에 올랐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들렀지만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걸었다. 유채밭에 유채가 없었다. 코로나로 인해 파종하지 않을 듯했다. 간간이 올라온 노란 유채를 보며 밭길을 따라 걸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을 보고 생각했다. 이곳이 무릉도원이구나. 이젠 떠나볼까?

 

 

이른 점심을 먹었다.

함덕에 오면 늘 순풍 해장국을 갔었다. 그때마다 뒷집 식당도 괜찮아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식당 이름이 제라진 밥상이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과 함께 뷔페 음식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해 주셨다.

7,900원을 선 결제했다.

식당 안 한갓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접시를 가지러 가면서 대충 훑어보았다. 샐러드, 완숙 달걀, 유부초밥, 탕수육, 돼지고기 볶음, 떡볶이, 콩나물, 무생채, 마늘, , 상추를 담았다. 두 번째로 잔치국수와 김치찌개를 가져왔다. 세 번째로 보리밥에 나물, 채소, 고추장을 올린 후 참기름을 두 바퀴 뿌렸다.

막걸리는 네 번째로 가져왔다.

뷔페 음식을 접시에 담으면서 막걸리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 술값이 인상되었는데 아직도 막걸리가 2,500원이었다. 술값을 결제하니 쟁반에 잔과 막걸리를 주셨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닭볶음탕도 나왔다.

막걸리 한 모금씩 마시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점심 특선인데 내가 일찍 들어와서 직접 접시에 담아 가져다주셨다. 술안주가 추가되었으니 한잔 안 마실 수 있겠는가? 아주 개인적인 맛 평가지만 전체적으로 음식 맛이 좋았다. 음식 중 김치찌개와 닭볶음탕이 가장 맛있었다. 다음엔 꼭 라면도 먹어봐야겠다.

잘 먹었습니다.

순풍 해장국보다 훨씬 맛있어요.’ 내 말에 순풍 해장국 득을 크게 본다며 겸손해하셨다. 테이블마다 비닐장갑, 소독제, 물티슈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나가면 바로 테이블을 소독제로 닦았다. 들고 나는 손님들을 친절하게 대하셨다. 오늘 난 뷔페 음식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 제라진 밥상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붉은오름 자연휴양림에 왔다.

함덕에서 201번 버스를 탄 후 우당 도서관에서 하차했다. 도로를 건너 6호 광장에서 231번 버스로 갈아타고 1시간 10분 만에 도착했다. 해송 숲 사이의 길을 걸어가니 매표소가 나왔다. 입장료 1,000원과 전기사용료 2,000원을 현금 결제했다. 야영데크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에 예약했다.

03데크의 이름은 상사화였다.

매표소 우측의 해송 숲에 야영장이 있었다. 우거진 숲을 뚫고 햇살이 데크에 내려앉았다. 밤과 달리 한낮 기온은 따뜻했다. 텐트를 전기를 사용하기 편한 방향으로 쳤다. 장기 백패킹을 할 때 핸드폰, 보조배터리, 랜턴의 충전은 필수요소다. 공중화장실 등에서 도둑전기를 사용하지 말고 떳떳하게 돈을 내고 사용하자.

 

 

야영테크를 따라 걸었다.

대부분이 해송 숲이고 일부 삼나무 숲을 통과했다. 휴양림 외곽을 한 바퀴 돈 것이다. 복수초를 제외한 다른 야생화는 아직 피지 않았다.

붉은오름에 올랐다.

급경사지에 설치된 침목 계단을 올랐다. 오름 정상까지 350m였다. 내 직업이 직업인지라 걷는 것과 산을 오르는 것은 선수급이다. 미세먼지 때문에 제주목장과 주위의 오름 군이 흐릿하게 보였다. 날씨 탓인가? 내가 가본 오름 중에서 이렇게 감흥이 없었던 곳이 또 있을까? 발길을 돌려 야영데크로 돌아왔다.

커피를 마셨다.

텐트 앞에 앉아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점에 점점 도달할수록 우렁찬 수증기를 내뿜었다. 시에라컵에 카누를 탔다. 뜨거울 때 한 모금을 마셨다. 목을 타고 흐르는 커피가 쉬고 있던 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숲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까마귀가 울부짖었다.

이쪽에서 울면 저쪽에서 화답했다. 아무래도 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생긴 것 같다. 짧은 숲속 명상을 마치고 복근 운동까지 했다. 한낮에 텐트에 누워 밖을 내다봤다. 고즈넉한 숲속 풍경은 내가 늘 상상 속에서 그리던 백패킹의 모습이었다.

 

 

숲의 어둠은 빨랐다.

밝음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물러갔다. 한순간에 찾아온 어둠에 잠시 당황했다. 휴양림 야영장이라 데크로드에 조명이 들어왔다. 텐트에도 랜턴을 켰다. 어둠은 늘 나에게 공포감을 준다.

즉석 육개장을 끓였다.

휴양림은 쓰레기를 되가져가야 한다. 최소한의 장비로 백패킹을 다니는 나는 쓰레기 발생을 줄이려고 언제나 노력하고 있다. 한 끼쯤은 이렇게 먹어도 상관없다. 밤하늘의 별을 벗으로 삼아 소주 한잔 주고받기엔 그만인 음식이다.

 

[내가 늘 가고자 했던 곳]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제주 백패킹 1일차 함덕해수욕장]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야영지가 될 것이다. 제주 백패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탄 버스는 326번이었다.

공항에서 제주 동쪽으로 가는 노선이었다. 동문시장을 거쳐 조천, 함덕을 지나간다. 나는 결정을 지체하지 않았다. 오늘의 야영지는 함덕해수욕장 야영장으로 결정했다. 1시간여의 버스 여정을 마무리하고 함덕 환승 정류소에서 하차했다.

 

 

6개월 만이었다.

작년 6월과 9월에도 이곳에서 야영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없는 동안 변화된 모습을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날씨가 흐린 탓에 석양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다. 어서, 텐트를 치러 야영장으로 가자.

바닷바람이 거셌다.

바람을 피해 워싱턴 야자수 아래 텐트를 쳤다. 장소 선택하는데 2분 텐트 치는 데 5분 걸렸다. 넓은 야영장이 휑뎅그렁했다. 군데군데 텐트가 쳐져 있었지만, 사람의 흔적은 수일 동안 없었던 것 같았다.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예상은 했었지만, 석양의 모습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인근 마트로 향했다. 제주에서의 첫날밤, 술이 빠져서야 하겠는가? 부시리회, 소주, 맥주 등을 샀다. 입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고 텐트로 돌아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텐트에 조명을 밝혔다.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는 야영할 때마다 꼭 가지고 다니는 장비 중 하나다. 내가 자연에 파묻혀 있는 동안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소중한 친구다.

아는 형님과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제주 왔음. 바람 겁나게 붐. 아무도 없는 함덕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하고 있음. 지금 소맥에 부시리회 먹고 있는 중. 라디오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노래가 나옴. 그곳이 바로 이곳이라 문자 보냄. 언제 함께 옵시다. 얼어 죽지는 않게 해 줄게.”

핫팩을 꺼냈다.

고요한 사방에 들리는 거라곤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잎 소리뿐이었다. ·하의 보온 옷(우모복)을 입고 배에 핫팩을 붙였다. 보온 신발(다운 슈즈)에 핫팩 하나씩 넣고 신었다. 무거운 동계 침낭 대신 가져온 경량 침낭으로 들어갔다. , 생각보다 괜찮았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왔다.

67일간의 제주여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예정이다. 지하철역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했다. 유성온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석역에서 하차했다. 6번 출구로 나가 오송행 B1 버스를 탔다. 세종 도심을 관통하여 40여 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배낭은 벤치에 올려놓았다. 가는 곳이 다른 버스가 들어왔다.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분주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청주공항행 버스를 탔다. 버스 창문 틈으로 생기있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버스는 바람을 가르며 공항에 도착했다.

 

 

김장비닐 안에 배낭을 넣었다.

온라인 체크인을 이미 했기에 수화물로 배낭을 맡겼다. 평소 배낭 무게보다 4kg이나 적은 8kg이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캠핑장비만을 가져왔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보안 절차를 받으러 갔다.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보조배터리, 랜턴, 라디오, 물은 에코백에 담겨 있었다. 1분도 지나기 전에 보안 절차가 끝났다. 탑승장은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연착 없이 바로 탑승이 시작되었다. 탑승권을 확인하는 기계의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나는 탑승구로 느지막하게 향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탑승은 이미 끝났다. 짐을 선반에 넣는다고 길게 줄 서게 되는 일도 없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은 진에어 승무원의 움직임이 활기찼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란 걸 눈동자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비행기가 움직였다.

의자에 앉아 있는 몸이 흔들거렸다. 승무원들은 안내방송을 진행되고 있었다.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엔진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내가 28년 전에 군 복무했던 활주로를 행하여 비행기가 이동 중이었다.

벨 소리가 울렸다.

, , . 이어서 승문원의 안내방송이 시작되었다. “손님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하겠습니다. 안전을 위해 좌석벨트를 착용해 주십시오.”

 

 

동체는 흔들림이 없었다.

굉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가던 비행기는 바퀴가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 순간 엔진 소리를 제외한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았다. 양력을 받아 상승만 하던 비행기는 이내 수평을 유지했다. 좌석벨트 표시등이 꺼진 후 기내의 공기는 소음과 함께 안정을 되찾았다.

햇살이 눈에 부셨다.

경량 재킷을 입고 있기엔 더웠다. 청명한 하늘은 아니지만, 햇살이 창을 통해 기내로 들어왔다. 비행기는 780km/h로 허공을 가르며 움직였다. 도시, , 하늘, , 바다, 구름, 나는 창밖의 풍경변화를 보고 그 속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35C 선반 번호를 확인했다.

그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통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멈춰섰을 때 내 좌석은 아기 의자처럼 보였다. 3열 좌석 가운데에 앉은 그는 체격이 우람했다. 엉덩이는 좌석에 꽉 꼈고 무릎은 앞 좌석에 닿았다. 그는 한 치의 여유 공간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그는 창밖만을 바라봤다.

그는 좌석의 불편함을 참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가끔 몸을 좌우로 움직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도 몸을 오른쪽으로 기울여야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바로 좌석에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그는 한결 편안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비행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즐거운 제주여행 되시길.

 

 

눈치채지 못했다.

수화물을 맡기고 보안 절차를 통과한 후 탑승을 기다렸다. 탑승이 시작됨과 동시에 탑승구에 긴 줄이 생겼다. 나는 줄 서는 걸 싫어한다. 평소처럼 계속 의자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통로좌석을 선택하는 건 조금이라도 늦게 타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었다.

탑승구로 향했다.

손에 들고 있는 검정 가방을 제외하고는 흰 모자, 흰 마스크, 흰옷, 흰 신발이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떤 잘못도, 어떤 거리낄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35C, 나는 선반의 번호를 확인하자마자 좌석에 앉았다. 그녀가 나를 지나쳐갔다. , 나도 모르게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전띠를 매려고 몸을 움직이다가 좌석 틈으로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 바로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과연 우연일까?

마침내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나는 서둘러 비행기에서 내렸다. 근데 내가 왜 그래야 했지.

 

 

비행이 끝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제주공항에 도착하겠습니다. (중략)”승무원의 안내방송을 시작으로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향해 회전하는 동안 제주 시가지가 점점 크게 보였다. 이륙할 때와 비슷한 굉음을 내며 비행기는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제주에 발을 디뎠다.

올해 첫걸음이었다. 해마다 3~4번 왔지만, 올해는 몇 번이나 올지 확신할 수 없었다. 수화물로 보낸 배낭을 찾았다.

이제 어디로 갈까?

정해진 곳은 없었다. 10분여 벤치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탔다. 이 버스 가는 곳 중 한 곳이 내가 머물 비박지가 될 것이다. 제주 비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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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던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꽂이에 두서없이 쌓여둔 책들의 제목을 훑어내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매트가 깔린 탁자 옆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전기장판이 켜진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을 뻗어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았다.

 

 

그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제목을 살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안이 찾아온 눈동자에 선명한 글씨가 펼쳐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불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부르르 떨렸다. 가끔 내쉬는 호흡과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책을 읽는 동안에 나를 휘감은 흥분은 내 얼굴에 홍조를 띠게 했다.

 

 

야성의 부름은 벅이 주인공이다.

벅은 늑대 개다. 미국 남부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받던 개였다.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광풍으로 하루아침에 썰매 끄는 개로 팔려 알래스카로 떠나게 된다. 가혹한 매질 속에 생존을 위한 처세술, 강자가 되기 위한 싸움기술 등을 배우게 된다. 그 과정에 자신을 부르는 자연의 소리를 듣게 된다.

벅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벅이 처한 가혹한 환경은 인간이 사는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지 말고 공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나가야 한다.

 

 

나는 모험과 여행을 즐긴다.

오늘 오후에 부산에 왔다. 부산에 여러 번 왔었지만, 동래구에서 숙박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여행은 도심 번화가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 속에서 지내야 한다.

나는 흥분하여 소리를 질렀다.

잠잘 곳은 정해졌으니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상첨화다. 음식은 여행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나에게 먹는 것을 빼놓는 여행은 상상하기 힘들다.

 

 

부산에서 8끼를 먹었다.

곰장어, 돼지국밥, 회정식 코스, 삼겹살, 호텔 조식 등. 음식은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반드시 입맛을 돋게 만드는 요소와 함께해야 한다. 그 요소는 술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모험과 여행을 즐기듯 음식을 즐겨야 한다. 한계를 뛰어넘을 때까지 먹고 마셔야 한다. 술에 취하듯 음식에 취해야 한다.

 

 

또 하루가 밝았다.

하루에 아침은 두 번 찾아오지 않는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내게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등을 떠밀었다. 비록 나는 도시에서 살고 있지만,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30분이 지났다.

금성산 자락 옥련암에 왔다. 차는 인근의 아파트 건물 앞 빈 공터에 세웠다. 등산화를 신고 천천히 산을 올랐다. 많은 사람이 산을 찾고 있다. 도심 인근의 산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산이 메말랐다.

바람에 휘날리는 건 희뿌연 먼지였다. 아름드리 소나무의 뿌리는 땅 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등산로는 훼손이 심해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었다.

양심도 메말랐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산 곳곳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눈곱만한 도덕심도 찾을 수 없었다. 생활 쓰레기, 음식물, 과일 껍질 등이 숲의 민낯을 말해주고 있다. 내가 가본 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산이었다.

 

 

더는 안된다.

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산을 이대로 버려뒀다가는 다시는 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없다. 이곳에 온 목적이 하나 있다. 내가 사흘 동안 이 산을 헤매고 다닌 이유와 같다.

나는 산에 대한 도덕적 신념을 갖고 있다.

나의 신념은 확고부동하며 살아있는 산 그 자체다. 산속의 나무, , , 곤충 등과 함께 있을 때의 청량함이 좋다. 산과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디뎌 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바다누리호
두미도 북구항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경은 볼 수 있어도 섬을 관찰할 수는 없다. 어떤 장소를 잠깐 지나치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천황산에서 바라본 북구항
천황산에서 바라본 청석마을, 동뫼섬

 

두미도에는 마을이 산재해 있다.

북구 항에서 반시계방향으로 고운, 설풍, 덕리, 순천, 대판, 청석, 남구 항, 사동으로 이어진다. 섬은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다. 가구 수도 얼마 안 되고 없어진 마을도 있다.

섬은 시간여행을 준비 중이다.

자연스럽게 사라져가는 것들이 있으면 잿더미 속에서도 한줄기 생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살고 싶은 섬, 두미도 가꾸기 사업의 하나로 작년 말부터 남구 항에서 사동, 북구 항, 고운, 설풍까지 옛길을 복원 중이다.

 

바다누리호에서 바라본 남구항
설풍마을에서 바라본 고운마을

 

섬 속에 옛길이 묻혀 있다.

섬은 옛길을 둘러싸고 옛길은 세월의 흐름에 잊혀 있었다. 콘크리트 임도의 편리함 때문에 옛길은 무시되었다. 삶을 되돌아볼 때 옛길은 소중한 삶의 흔적이며 추억이 된다.

마을은 옛길을 통해 이어진다.

옛길을 따라 삶의 공간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다. 보석의 아름다움이 사람들을 홀리듯 옛길의 복원이야말로 두미도 사람들과 두미도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게 할 것이다.

 

북구항에서 고운마을 가는 옛길

 

마을 사이의 거리는 시간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덤불을 걷어내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옛길은 선의 흔적을 걷는 길로 드러낸다. 설풍에서 묵은 밭 사이로 난 좁은 돌담길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가면 덕리를 만나게 된다. 무거운 돌절구를 지고 오갔던 옛길이다.

그 옛길을 찾아 헤매던 중 칡을 보았다.

칡의 굵기는 얼마나 될까? 바위 밑까지 뻗어 있는 칡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굵은 것이다. 칡의 즙은 쌉쌀하지만 건강한 맛이다. 칡을 보고 있으니 군침이 돌기 시작한다. 칡은 오랫동안 인적이 드문 장소에 있어서 이렇게 뻗어 나갈 수 있었다.

 

설풍마을에서 덕리마을 가는 옛길 입구

 

덕리는 돌담만 남았다.

덕리는 산속 깊숙이 떨어진 외딴 마을이지만 돌구덕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칼로 두부를 잘라놓듯 돌담만 남은 옛 집터는 한때 반듯한 집들로 동네를 이루고 살던 곳임을 말해준다.

풍경을 바라보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해안 절벽과 돌구덕이 아무리 지척이라도 절대로 한걸음에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돌구덕 풍경을 보고 파도와 바람 소리를 듣는데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 다르다. 각자가 지닌 마음속 세계의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덕리마을(겨울)
덕리마을(봄)
돌구덕
돌구덕 파노라마 사진

 

절벽 위에 길이 있다.

덕리에서 돌구덕을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길을 걷는다. 낭떠러지 위 바위를 쪼아 만든 길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절벽 구간을 지나 동백숲에 다다르면 이내 임도와 만나게 된다.

임도가 옛길이다.

대판을 지나 청석까지는 옛길을 넓혀 임도로 만든 길이다. 따분하게 느껴지는 임도가 절대 아니다. 대판의 비탈은 고즈넉하고 청석의 들판은 평화롭다. 두미도 꼬리인 동뫼섬을 바라보며 임도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절벽 길
조망점
임도에서 바라본 동뫼섬

 

고갯길을 넘는다.

청석 임도에서 다시 대숲으로 들어선다. 대판과 청석 사람들이 남구 항을 가기 위해 넘어 다녔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천왕봉 등산로와 인접하고 있다. 고개를 넘으면 남구 항이 한눈에 보인다.

사람마다 보고 듣는 것이 다르다.

들으려는 의지가 있기에 귀가 있고 보려는 욕망이 있기에 눈이 있는 것이다. 섬에서 생활이 외로울 거란 생각은 오산이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살아가는 방식이 같을 수는 없다. 행복의 기준은 타인이 아니라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다.

 

남구항 동백 숲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았다.

몸과 마음의 안식을 위해 23일 동안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건물 앞에는 재활용품을 이용하여 만든 조형물이 전시되어 있다. 비닐하우스 같은 두미 쉼터에는 난로도 설치되어 있어 휴식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살고 싶은 섬은 두미도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은 한호수 사장님 부부가 운영 중이다. 캐나다에서 20여 년 동안 관광업을 하다 귀국한 후 두미도의 매력에 반해 이주하셨다. 두미도만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하고 있다.

 

두미도 바다 펜션(민박)
두미도 바다 펜션 (민박)
저녁식사
두미쉼터

 

섬의 밤은 먹색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고기잡이배의 불빛만이 넓은 바다를 좁게 비추고 있다. 밤바다의 경외감에 빠져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둠은 점점 옅어진다.

섬의 새벽은 짙은 먹색 빛깔에서 엷은 안개 빛깔로 바뀌고 있다.

나의 육체, 어둠에서 나와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머릿속 생각의 끈을 마음껏 풀어 놓는다. 창의적인 사고는 늘 나를 성장시킨다.

오늘도 살고 싶은 섬, 두미도에서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북구항 조형물(두미도 바다 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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