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에 잠을 설쳤다. 불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밤을 지새운 것 같은 느낌이다. 불청객처럼 어둠 속에서 눈을 두리번거린다. 오른손을 더듬어 책과 안경 사이에 놓여있는 휴대전화를 집어 든다. 오전 31. 시간을 확인하는데 짧은 헛기침이 나온다.

 

어스름한 새벽에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이지만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는데도 몸이 으슬으슬 떨린다.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시린 발을 분주하게 움직여본다. 여명이 밝아오는데 아직도 달은 밤보다는 희미한 모습으로 하늘을 배회 중이다. 세상이 한층 밝아졌을 때 114번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햇살이 눈에 부시다. 세상은 늘 그렇듯 환하게 미소 짓는다. 오늘 아침은 유독 화창하다.

 

 

 

집을 나선 지 2시간이 지나간다. 서대전에서 6, 북대전에서 6명을 태운 버스는 대전을 벗어나자 거침없이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햇살을 커튼으로 가린다 해도 따가움이 느껴지듯 여행의 들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편안한 우등좌석에 몸을 기대어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익숙한 겨울 풍경을 바라본다. 또 이렇게 한해가 또 지나가는구나!

 

어느덧 버스는 인천대교를 달리고 있다. 5개월 만에 다시 인천공항에 왔다. 인제에서 온 이 부장이 합류하여 총 13명 완전체가 결성되었다. 예전에 느꼈던 인천공항의 북적거림은 전혀 없다. 하나투어 데스크에서 중국 복수비자를 받고 서둘러 E17~21 카운터에서 사천항공 탑승수속을 마쳤다. 5분간의 기다림을 끝내고 보안검색대로 향하는 순간 새로운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Some doors close forever, others open in most unexpected places.

(어떤 문이 영원히 닫힐 때 가장 예상치 못했던 다른 문이 열린다.)

 

공항의 한산함은 면세점까지 이어진다. 평일 낮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면세점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은 주류를 판매하는 곳이다. 장식장에 진열된 술 중에서 Glenfiddich 위스키에 두 눈이 꽂힌다.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술을 산다. 오늘 밤은 뜻깊은 저녁이 될 테니까.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탑승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행기는 활주로에 큰 마찰음을 남긴다. 허공에 몸이 놓였을 때 기분이 왜 그리 이상한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 .’ 20분이 지났을 때 안전띠 해제 음이 울린다. 비행기가 수평을 잡고 안정이 되었을 때 기내엔 묘한 음식 냄새가 풍기기 시작한다. 냄새는 내 허기진 위장을 뒤틀리게 하고 입안에는 어느새 침이 고인다.

짧은 시간 동안 비좁은 항공기는 모든 것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음료, 기내식, , 음료가 승무원들의 움직임에 맞춰 승객에게 주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산물들이 회수된다. 그 순간이 지나면 조명 불은 희미해지고 시끄럽지만 고요한 기내에서 혼자만의 시간에 빠진다.

 

열린 창으로 햇빛이 반사되어 더욱 하얗게 빛나는 11월의 솜이불 같은 구름을 바라본다. 허공 위에 펼쳐진 백옥같은 양탄자는 먼지 낀 티끌까지 깨끗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이번 여행에 기억해야 할 것은 오직 깨끗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깨끗하다라는 뜻은 마음씨나 행동 따위가 떳떳하고 올바르다는 뜻이다.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은 큰 인내심이 필요하다. 잠이라도 들었으면 좋을 테지만 두 눈은 멀뚱멀뚱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1분이 한 시간 같은 느낌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좁은 복도를 서성이다 화장실을 다녀온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이국적인 것은 없었다.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색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전혀 없다. 한 시간의 지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버스가 있는 공항 밖으로 나온다. 이곳엔 다른 세계의 또 다른 어둠이 장막을 두르고 있었다. 이곳은 안개로 유명한 청두(성도)이다.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한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은 안개에 가려져 희뿌옇게 번져 보인다. 저녁은 중국 음식이다. 어떤 요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모두가 음식 특유의 향 때문에 선뜩 젓가락이 가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그 맛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풍성한 음식을 앞에 놓고 모두가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술이 등장한다. 각자의 취향대로 중국 술, 위스키, 맥주를 마신다. 오늘 저녁처럼 술잔을 든 순간보다 더 유쾌한 시간은 없을 듯하다. 술 한잔에 작은 추억 하나가 몸으로 스며든다. 입과 코끝에 쾌쾌한 마라(麻辣) 냄새를 느끼자 다시 한번 이곳이 중국임을 실감한다.

 

 

 

천부국제호텔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했다. 나는 무열 형과 같은 방이다. 삼삼오오 옆 방에 모여 월드컵 지역 예선 한·중전 축구경기를 본다. 경기 내내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마신다. 컵라면은 저녁을 제대로 못 먹은 배고픈 하이에나의 차지가 된다. 이강인 선수가 찬 코너킥을 손흥민 선수가 헤딩으로 골을 넣는다. 아주 자연스럽게 고함을 지르고 손뼉도 친다. 그 바람에 또 건배하고 소주를 마신다. 마치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처럼 술잔은 쉼 없이 돌고 돈다.

 

취기가 돌아 바람을 쐬려 밖으로 나갔다. 호텔 주변 공원을 지나 동료들이 있는 곳까지 걸었다. 호텔에서 청두(성도) 시내까지는 너무 거리가 멀다. 인근 식당에서 꼬치와 맥주로 청두(성도) 시내로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말도 통하지 않는 현지인과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그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라도 밤을 즐기고픈 그네들의 마음은 내가 충분히 이해한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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