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어스름이 찾아오기 전 어둠에 휩싸인 리장고성은 적막하다. 터벅터벅, 현대를 벗어나 오래전에 존재했던 마을로 들어서면 낯선 땅이 주는 신선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조용한 골목을 걷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엔 눈에 익은 별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에게로 쏟아지는 별빛. 별을 본지도 무척 오랜만이라 그저 멍하니 하늘을 응시한다. 아주 오래도록.

 

조식을 먹기 전에 커피를 마신다. 텅 빈 위장에 쓴 액체가 흘러 들어가면 잠자고 있던 위액이 기지개를 켠다. 이때의 짜릿함이 너무 좋다. 여행을 왔다고 아침을 먹는 것은 아니다. 아침 식사는 오래된 나의 습관이다. 오늘도 변함없이 고수와 파를 잔뜩 넣은 쌀국수를 먹는다. 역시 해장엔 쌀국수만 한 음식은 없는 듯하다. 한국에서 수육을 막국수와 함께 먹는 것처럼 베이컨을 쌀국수와 함께 먹었다.

 

어허. 맛있는데!’

한 그릇 더 먹어야지

 

 

 

버스를 타고 옥룡설산(玉龍雪山)으로 향한다. 차 안에는 고산증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결국, 현지가이드를 통해 고산증약과 산소통을 구매한다. 산소통은 이해하는데 고산증약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4,000m급 산을 여러 번 다녀본 내 경험상 고산증은 약이 없다. 적응의 문제인 것이다. 그냥 재빠르게 하산하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내 눈은 생각지도 못한 아름다운 광경을 쉽게 포착한다. 옥룡설산은 여강(리장)에서 20km 떨어진 서북부 웅장하게 서 있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옥룡설산의 고혹적인 자태에 순식간에 매료된다. 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네팔 히말라야산맥의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스위스 체르마트의 마터호른과도 견줄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부실만큼 찬란하고 화려하다.

 

 

 

여강(리장)시내를 출발한 버스는 공원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해발 3,000m가 넘는 곳이라 다들 고산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여기서 친환경 공원 버스로 갈아타고 빙천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이동을 한다. 버스가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벌써부터 산소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케이블카 탑승장은 해발 3,356m이다.

 

 

 

 

케이블카를 타면 눈앞에 아찔한 풍경이 펼쳐진다. 함께 탄 사람들이 고소공포증 때문에 안절부절 어찌할 줄 모른다. 상대적으로 난 평온하다. 베트남 사파의 판시팡,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운터베르그, 스위스 루체른의 리기 등 지금까지 타본 케이블카(로프웨이) 중에서 가장 편안했다. 10분 만에 해발 1,150m를 단숨에 올라온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빙천공원은 해발 4,506m이다. 오랜만에 높은 곳에 갑자기 올라왔더니 머리가 어지럽고 띵해진다. 이곳에서 무산소로 해발고도를 174m 더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라 시계가 좋았다. 옥룡설산은 13개의 봉우리가 이루어졌고 최고봉인 샨지두(扇子陡)봉은 해발 5,596m이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다. 은빛 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는다. 전망대에 서서 주변 풍광도 바라보며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 4,680m 전망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에게도 고소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쉽게 닿을 수 없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일념으로 모두들 고산증을 이겨내며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데크는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많은 사람이 고산증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아 산소통으로 산소를 마시고 있다. 그렇게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목적지에 다다른다. 빠르고 느림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가 올라왔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선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혼자서 하산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무가 빠르게 밀려오고 있다. 경험상 조만간 이곳은 운무에 휩싸이게 된다. 해가 운무에 가려지기 시작한다. 아침보다 훨씬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체하지 않고 홀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을 시작했다. 겸손함을 느끼게 만드는 웅장한 대자연의 신비는 운무와 함께 사라지고 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순간이고 아는 만큼 느낄 수 있었던 날이다.

 

인생은 짧은데 오늘은 유독 긴 시간 속에 사는 것 같다.

 

 

 

다시 공원 버스를 타고 두 번째 정거장에 내렸다. 이곳은 옥룡설산의 눈이 녹아 흐르는 계곡이다. 계곡물에 비친 달빛이 푸르다 하여 람월곡(蓝月谷, Blue Moon Valley)이라 불린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에메랄드빛 호수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이 결혼사진을 찍고 있었다. 공원 버스에서 내려 계곡 사이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계곡물은 옥빛인데 계단식 인공구조물이 그 빛의 아름다움을 퇴색시키는 것 같다.

 

속이 헛헛하다. 배가 고픈 거 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짧은 람월곡 산책을 마치고 공원 버스를 탄다. 다시 공원 버스 터미널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옥룡설산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자욱하다. ‘비가 내리겠는데.’

대부분 사람이 미세하게 느끼는 고산병 증세와 입에 맞지 않는 중국 음식으로 표정이 좋지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추장을 가져온 것이다. 내가 맥주를 마시며 중국 음식을 먹는 동안 밥에 고추장을 비벼 맛있게 먹는다.

 

 

 

비가 내린다. 처음엔 우박도 떨어졌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인상여강쇼를 보기 위해 우비를 챙겨 입고 자리에 앉는다. 내리는 비는 아랑곳없는 듯이 공연은 시작된다. 차마고도를 오갔던 나시족을 비롯한 마방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인상여강쇼는 세계적인 감독 장예모가 리장에서 탄생시킨 작품이다.

 

2006년부터 옥룡설산 일대 500여명 주민이 직접 참여한 공연으로 차마고도 소수민족의 애환과 설화를 담고 있다. 아마도 그들은 깎아지른 벼랑과 설산을 오갔을 것이다. 역동적인 춤을 보고 있자니 그 당시 마방들의 기개가 전해지는 듯하다. 목숨을 걸고 차마고도로 떠나는 남자들과 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일상 등이 전개된다.

이런 장엄한 공연을 실로 오랜만에 본다. 언어가 달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배우들의 행동으로 모든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공연의 끝에는 나시족의 축복을 받는 순서가 있었다. 소망의 손길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골짜기를 가진 옥룡설산으로 향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기 마음속의 해와 달, 샹그릴라를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이상향, 도원경(桃源境).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아 떠나자

 

 

 

 

 

비가 그쳤다. 버스를 타고 여강(리장) 시내 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해발고도가 낮아지니 다들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나시족을 대표하는 만신을 모시고 있는 동파만신원과 옥과 같은 물이 흐르는 곳인 옥수채를 차례로 방문한다. 동파만신원에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나시족의 상형문자가 벽화로 곳곳에 새겨져 있다. 옥수채는 동파 문화가 시작된 곳이며 여강(리장) 시내로 흘러드는 식수의 발원지이다. 옥룡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옥수채에서 흑룡담을 거쳐 시내로 흘러간다.

 

오늘 하루도 길게 느껴진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보려고 하다 보니 그만큼 일정이 많고 고되다. 저녁을 먹기 전에 90분 동안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특히 발 마사지가 피로를 풀어준 특효약이 되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향기 가득한 자연산 버섯 샤브샤브를 먹어 몸의 영양을 보충했다.

 

국물이 끝내주네!’

 

 

 

빔에 리장고성을 걷는다. 리장고성은 송나라 때부터 건설되어 약 1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나시족의 도시이다. 1996년 발생한 진도 7 지진에도 훼손되지 않은 견고한 목조건축물이 즐비하다.

검은 천막으로 둘러싸인 밤하늘의 별빛보다 더 강렬한 빛이 빛나고 있다. 하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검고 리장고성의 거리는 샛노란 색 빛으로 출렁인다.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긴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아를의 밤의 카페그림처럼 불타오르는 노랑을 표현한 듯하다.

 

사쿠라 카페에 들어섰다. 이곳은 라이브카페이다. 중앙무대에선 노래가 한창이고 목재로 만들어진 독특한 실내장식이 눈에 띈다. 실내에서 음악도 들으며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름다운 고성거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중국에서 먹어본 최고의 맥주가 있어 더욱 좋았다.

 

Panda Wushi

맛있어요!’

 

 

 

리장고성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따라 거스르지 않는 물처럼 산다. 강물, 돌다리, 오래된 거리와 건물, 초록의 나무가 어우러져 동화 같은 풍경이다. 낮의 차분함과 밤의 화려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곳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멈출 수가 없었다.

 

패키지 공식일정은 끝이 났지만, 우리의 일정은 새벽까지 끝나지 않는다. 어젯밤과 똑같이 야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어제의 모습을 Ctrl + C 해서 Ctrl + V를 한 것 같다. 오늘 하루는 평소보다 이야기가 가득한 하루였다. 새벽까지 무열 형, 승남이와 술잔을 기울이며 각자의 생각을 디자인했다.

 

전통에 녹아내린 현대적인 감성이 리장고성의 매력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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