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듣던 나는 책으로 눈을 돌렸다. 책꽂이에 두서없이 쌓여둔 책들의 제목을 훑어내렸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밀레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등이 눈에 들어왔지만, 오늘따라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는 두꺼운 매트가 깔린 탁자 옆으로 갔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다섯 권의 책들이 놓여 있었다. 전기장판이 켜진 매트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손을 뻗어 책들을 한 권씩 훑어보았다. 그중 책 한 권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책을 손에 들고 다시 한번 제목을 살폈다.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이다. 나는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노안이 찾아온 눈동자에 선명한 글씨가 펼쳐졌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이불 속으로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나는 책에 빠져버렸다. 온몸에 전기가 통하듯 부르르 떨렸다. 가끔 ..
나는 꿈을 꾸었다. 지금보다 어릴 적에 더 많은 꿈을 꾸었다.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여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악몽을 종종 꾸었다. 악몽을 꾼 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오줌을 싸고 말았다. 졸지에 오줌싸개가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꿈도 꾸었다. 나비처럼 유유자적하게 꽃과 하늘 사이를 날아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꿈속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은 없었다. 꿈속은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를 모르는 대다수를 위해 나를 소개하겠다. 나는 꿈을 꾸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살아있다는 것에 원초적 행복을 느낀다. 오늘날처럼 험한 세상을 살아가기엔 너무 순수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 예전에 그랬다는 말이다.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내 신조는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악습..
다른 날과 다른 점이 없었다. 12시 5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서관을 나왔다. 왕복 8차선 도로의 인도를 걸었다. 수년 동안 보아오던 흔한 거리의 풍경이 펼쳐졌다. 10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사이 태양은 조금 더 높이 떠올랐다. 햇살이 지표면으로 엄청난 광선을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지금 이 순간 계절이 변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햇볕은 따뜻했다. 2월의 어느 수요일,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다. 모든 게 밝고 고요하며 바람마저 향기롭다. 향기는 새롭지 않았다. 오랫동안 맡아오던 익숙한 냄새였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켰다. 햇살의 온기가 열린 창문 사이를 통과하여 실내로 들어왔다. 바람의 향기에 햇살의 열기가 더해져 방안으로 퍼져나갔다.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떡볶이는 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두미도에 왔다. 여행은 나에게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특히 섬 여행은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취미 생활이 되고 있다. 새로운 생각을 위해서는 언제나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 여행은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진정한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고 싶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두미도는 느낌이 있다. 섬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겉모습이 아니라 섬에 숨어 있는 마을 터, 옛길 등에서 풍겨 나오는 임의로 할 수 없는 불변의 것에서 이끌림을 느낀다. 나는 이 이끌림 때문에 두미도를 다시 찾게 되었다. 섬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차를 타고 임도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면 이색적인 풍..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봄이 되면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나무는 나이테가 더해질 때마다 늙는 것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는 것이다. 내일의 성장은 오늘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구나 변화를 주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두려움이 성장을 막는 방해요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모든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자. 최악의 질병은 망설임이다. ‘꼭 해내고 싶은 일’은 주저함이 없이 실천해야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생활에 남게 된다. 실천은 습관을 형성하는 근원이며 그 습관이 나에게 기쁨을 가져다줄 거라고 확신한다. 유혹을 이겨내면 성장할 수 있다.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소한 유혹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본다. 표정은 정직하다. 속마음은 항상 표정에 드러난다. 속마음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게 아니다. 땅의 이력은 겹겹이 쌓인 세월의 층으로 알 수 있고 사람의 이력은 얼굴로 드러난다. 얼굴을 보면 나를 알 수 있다.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면 깨닫게 된다. 지난날의 내 삶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알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다. 내가 초상이란 제목의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 정직하기 위해서 나를 글로 풀어보려는 것이다. 거울을 본다. 등뼈를 곳곳이 세우고 서서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는 자태가 진지하고 엄숙하다. 운동화를 싣고 청바지와 흰색 오리털 재킷을 입은 모습이 단순하고 깔끔하다. 차림에서 벌써 성격이 드러난다. 물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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