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서 바라본 베네치아 메스트레

 

로마로 떠나는 날이다.

오후 기차라서 체크아웃까지 느긋하게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호스텔 로비에서 여행기를 썼다.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정오쯤 호스텔을 나와 베네치아 메스트레역에 왔다. 기차를 타기 전, 플랫폼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빵을 먹었다. 빵과 맥주 생각보다 괜찮은 조합이었다.

 

로마행 기차
포도밭
로마 테르미니 (Roma Termini) 역

 

로마행 기차를 탔다.

다음 정거장인 파도바(Padova)까지는 기차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후 종점이 나폴리인 기차는 정거장을 지나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끝없는 포도밭 풍경을 바라보느라 4시간의 기차여행이 지루하지 않았다. 포도주의 나라답게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다. 10여 분이 연착되어 로마 테르미니(Roma Termini)역에 도착했다.

 

로마거리

 

밀라노에서 그랬던 것처럼 첫인상은 비교적 유쾌하지 않았다. 치근덕대는 호객행위, 쓰레기로 뒤덮인 더러운 길거리, 구걸하는 부랑자들 등 로마라는 세계적인 관광도시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되었다. 여행 전,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너무 좋은 선입관을 가졌던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되었다 로마는 베네치아보다 훨씬 더 더웠다. 뜨거운 햇살이 거리를 걷는 나를 지치게 했다.

 

Casa S. Giuseppe di Clunny

 

마침내 수도원에 도착하여 벨을 눌렀다. 10초쯤 지났을 때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내부는 밖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시원했고 계단을 올라 리셉션에서 체크인했다. 배정받은 방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싱글룸인데 남향이라 그런지 후끈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도 없었다. 대충 짐을 풀어놓고 찬물로 샤워한 후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실내보다 실외가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Fontana Antica(공원)

 

 

 

 

콜로세움

 

수도원 인근의 공원에 들어섰다. 커다란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원형건물이 형체를 조금씩 드러냈다. 로마 시대에 검투 경기를 했던 3층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이 그곳에 있었다. 그 주변은 이미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포진하고 있었다. 햇살은 서쪽 하늘에서 아직도 맹렬한 기세로 열기를 내뿜고 있었지만, 콜로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물론 나도 사진을 찍었다.

 

대전차 경기장
진실의 입

 

 

 

 

영화 벤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났고 팔라티노 언덕이 보이는 대전차 경기장에 서 있었다. 이곳은 전차 경기를 보러온 로마인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전차 경기장 인근에는 진실의 입도 있었다. 진실의 입은 고대의 맨홀 뚜껑에 사람 얼굴을 새긴 것으로 뚜껑과 관련된 신화가 있다. 우리에게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손을 넣는 장면으로 유명한 곳이다. 막상 와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진실의 입에서 오렌지 정원 가는 길
오렌지 정원
오렌지 정원에서 바라본 풍경
몰타 기사단의 정원을 통해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

 

미친 듯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피해 도로를 건너 오렌지 정원에 들어섰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에 식수대가 놓여 있었다. 목을 축이고 사람들이 운집한 전망대로 갔다. 그곳에서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이 바라다보였다.

오렌지 정원을 지나 마을로 더 올라갔다. 뜬금없이 긴 줄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조그만 열쇠 구멍에 눈을 대고 몰타 기사단의 정원을 통해 성베드로성당의 중앙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 줄에 섰다. 15분이 지나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열쇠 구멍에 눈을 댔다. 눈으로는 잘 보였지만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몇 번을 시도해도 초점을 잘 잡을 수가 없었다. 내뒤에 줄을 선 사람들을 생각해 그쯤에서 포기하고 물러섰다.

 

콜로세움 인근의 골목
필라티노 언덕 입구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콜로세움과 달

 

오후 8시가 넘었는데 아직도 후텁지근했다.

마트에 들러 맥주와 과자를 샀다. 로마의 골목은 주차된 차량과 좁은 인도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골목을 돌다 수도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콜로세움으로 왔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지만, 달이 떠 있었다. 콜로세움 위에 떠 있는 달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오후 10시가 지나야 야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각 피자와 맥주

 

그러고 보니 오늘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문을 닫기 전에 겨우 조각 피자를 살 수 있었다. 낮 동안 태양의 은총을 가득 받은 내 방은 여전히 더웠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샤워를 했다. 찬물이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니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처럼 이동하는 날은 언제나 피곤했다. 열대야를 느끼지만 모처럼 혼자 쓰는 방에서 편안하게 잠들고 싶었다. 로마에서의 첫날은 설렘보다는 무더위에 지쳤고, 거리의 지저분함에 내 마음이 찜찜한 하루였다. 부디 오늘 밤에는 열대야로 잠을 설치지 말아야 할 텐데.

Flixbus  정류장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워낙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오전 9시까지도 한참이 남아 있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어제 여행기를 쓰면서 시간을 보낸 뒤 호스텔을 나섰다. 베로나행 Flixbus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요일인데 일요일 같지 않았다. 내가 여행 중이라 그런가?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르겠지만 막 도착한 버스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내가 버스에 탔을 때도 이미 많은 사람이 버스에 타고 있었다. 3A는 내가 예약한 창가 좌석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앉아 있었다.

 

이탈리아 고속도로
포도밭

 

‘Excuse me, This is my seat.’ 자다 깬 듯 언짢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일은 여행 중에 흔하게 발생했다. 유럽은 교통편을 예약할 때 좌석을 예약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좌석 예약에도 추가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빈자리를 찾아 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는 이탈리아 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렸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토바이도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정체는 전혀 없었다. 베로나 외곽까지 오는데 1시간 25분이 걸렸다.

 

베로나 기차역
공원

 

구글 지도를 한번 확인한 후 거리를 걸었다.

횡단보도를 건넜더니 우측에 베로나 기차역이 있었다. 기차역에서 정면으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베로나 아레나가 있는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로나는 베네치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다음 날 체스키크룸로프를 다녀왔을 때의 느낌과 같았다. 현대에서 중세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아침인데 햇살이 강렬했다. 오랜만에 선크림까지 발랐는데도 견딜 수가 없어 모자를 뒤집어썼다. 역을 지난 뒤 햇살을 피해 공원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나무들, 잔디밭, 예전 동물원 흔적, 여유롭게 일요일 오전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석조 방어문 (Porta Nuova) 앞 도로
카페나 식당 등의 야외 테라스가 있는 인도를 걷다

 

베로나 남쪽 출입구였던 16세기 초의 석조 방어문(Porta Nuova)을 지나면 곧게 뻗은 도로가 나타났다. 건축물과 도로 사이 인도에는 큰 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었다. 인도를 따라 걸어가면 카페나 식당 등의 야외 테라스가 줄지어 있었다. 우리와 다른 문화는 이런 것이었다. 햇볕이 뜨겁고 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일어나는 야외에서 굳이 음식을 먹으면서 앉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심지어 야외 테라스 자리는 자릿세도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베로나의 남쪽 관문
카스텔베키오 성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베로나의 남쪽 관문이 보였다. 저 관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오고 보수공사 중인 베로나 아레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관문을 통과한 후 좌회전을 했고 카스텔베키오 성으로 향했다. 베로나를 서쪽에서부터 한 바퀴 돌아 베로나 아레나로 갈 생각이다.

성은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박물관은 유료였고 고딕,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물관은 전혀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은 거대한 장벽 같은 웅장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카스텔베키오 다리

 

성을 나와 카스텔베키오 다리로 향했다. 성보다는 다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다리에서는 성을 배경으로, 때론 아디제강을 배경으로 사진찍기 좋은 장소였다. 다리는 14세기에 대리석과 벽돌로만 지어진 아치 모양이었다. 지금 다리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된 것이었다.

 

아디제강
베로나 골목
산타마리아 대성당
산타마리아 대성당 도서관

 

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했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걷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다시 우회전한 후 조각상이 있는 다리를 건넜다. 또다시 좌회전해서 큰 플라타너스가 서 있는 아디제강 인도를 걸었다. 나무 그늘은 시원했고 뜨겁게 달궈진 몸뚱어리는 천천히 식어갔다. 더운 여름철에는 새벽부터 오전까지, 그늘을 중심으로 골목과 길을 걸어 다니는 여행이 최고로 좋은 방법이었다. 어느덧 산타마리아 대성당까지 왔다. 엄숙한 분위기를 한방에 깨트리는 일요일 정오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성당에 들어가지 않고 성당 옆 도서관을 구경했다.

 

피에트라 다리
피에트라 성
피에트라 성에서 바라본 베로나 도심

 

 

 

 

기원전 100년에 완공된 로마 시대의 아치형 다리를 건넜다. 다리에서 언덕 계단을 올라 피에트라 성에 도착했다. 나무 그늘도 있었고 시원하게 강바람도 불어왔다. 성벽에서 베로나 도심을 내려다봤다. 오래된 건축물들이 아기자기하게 늘어서 있었다. 만약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베로나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구경하지 못했을 것이다.

 

포카체리아 (FOCACCERIA), 피자

 

성을 내려온 후 점심을 먹었다. 다양한 조각 피자를 파는 포카체리아(FOCACCERIA)에 들어갔다. 이곳은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피자 맛집이었다. 사람들은 취향에 따라 피자를 차갑게 먹기도 하고 뜨겁게 먹기도 했다. 나는 피자를 고른 후 전자레인지에 피자를 데워달라고 했다. 평소에 마시지 않는 콜라를 마시며 피자를 먹었다. 특별할 것 없는 피자 맛이었다.

 

스칼리 체리 가문의 방주(장례 무덤)
시뇨리 광장, 단테 동상

 

단테의 동상이 있는 시뇨리 광장에 왔다. 광장마다 사람들이 몰려있기 때문에 주변이 어수선했다. 단체 관광 안내자가 스칼리 체리 가문의 방주(장례 무덤)에 관해 설명하고 있었다.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닌데. 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람베르트 기념탑
에르베 광장
줄리엣의 집

 

에르베 광장에 긴 줄이 있었다. 나는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중세 탑인 람베르트 기념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꼭 봐야 하냐? 줄이 이렇게 긴데,’ 줄리엣의 집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줄이었다. 진짜 줄리엣의 집은 아니었다. 셰익스피어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 영향을 준 석조 난간이 있는 집이었다. 결국, 나도 줄을 섰고 인파에 떠밀려 들어갔다가 사진만 빨리 찍고 나와버렸다.

 

베로나 아레나

 

그늘진 골목을 걸었다. 유명 관광지만 벗어나면 한적하고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골목길을 돌아 베로나 아레나에 도착했다. 운이 좋게 앉은 광장의 의자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베로나 아레나만을 쳐다봤다. 물론 맥주를 마셨고, 인적이 드물 때 사진도 찍었다. 그냥 그렇게 있는 게 줄곧 좋았다.

 

그늘진 골목, 식수대
12oz  카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가본 주변 골목을 돌다가 베로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12oz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 화장실을 돈(보통 1유로)을 내고 사용하는 것보다 이런 방법이 더 합리적이었다. 또한, 무척이나 더웠기에 버스 시간까지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간을 보냈다. 베네치아행 버스는 비첸차(Vicenza)를 거쳤고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동방 (東方), 김치찌개

 

호스텔에서 샤워한 후 오후 9시경에 동방(東方)에 갔다. 베네치아에서 세 번째로 방문하는 중국식당이었다. 김치찌개, 볶음밥, 칭다오 맥주를 주문했다. 이 식당을 선택한 이유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중국식 김치찌개였지만 이번 여행 중 처음 먹는 김치인지라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해가 진 밤거리가 낯설었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그냥 잘 수 없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불야성을 이루는 파티 현장을 흘끗 쳐다봤다. 내일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 로마로 떠난다. 파티 음악은 오늘도 건물 구석구석에 울려 퍼졌다. ‘안녕, 베네치아!’

야외 테라스에서 아침식사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진 파티로 인해 중간에 잠깐 깨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잠잔 적은 없었다. 숨소리만 이따금 들리는 조용한 객실을 나와 로비로 내려갔다. 광란의 밤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야외 테라스는 엉망진창이었다. 호스텔 직원들이 분주하게 전날의 흔적을 하나둘 치우기 시작했다. 깨끗하게 치워진 야외 테라스에서 샐러드에 요구르트를 부어 아침을 먹었다.

 

 

 

 

기차표 발권
베네치아 본섬

 

 

 

 

무더위를 피하려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역으로 가는 건널목 신호등 앞에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도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 본섬으로 가는 것 같았다. 베네치아 본섬까지 기차요금은 1.45유로였다. 매표창구가 아닌 키오스크 기계로 표를 구매했다.

기차를 타고 아드리아해와 지중해로 이어지는 바다를 건너 베네치아 본섬까지 15분 만에 도착했다. 22개의 플랫폼이 있는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은 각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베네치아 본섬(산타루치아역 앞 운하)

 

이곳이 말로만 듣던 베네치아란 말인가?

어제 밀라노에서 느낀 이탈리아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거리의 부랑자들이 많았고, 대부분 운전자가 과격하게 차량을 운전했으며, 거리에는 치우지 않는 쓰레기가 널려있고, 골목 구석마다 소변 냄새 등 악취가 심하게 났다. 오늘 베네치아에서도 그 느낌은 똑같았다.

. 바다의 색깔이 너무 탁하고 온갖 종류의 쓰레기가 떠다녔다. 수많은 수상 버스, 수상 택시, 곤돌라, 화물선 등이 뒤섞여 좁은 폭의 운하를 왕래하고 있었다. 베네치아를 일컬어 물의 도시라고 말한다. ‘왜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지?’ 내가 막상 베네치아에 와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국적인 베네치아 풍경

 

인파가 적은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소운하 사이는 대부분 아치형 작은 다리로 연결되었고 그 운하를 작은 배들이 오갔다. 나와 같은 외국인의 시선에는 모든 것들이 색다른 풍경이었다. 바라보는 모든 풍경이 신기하고 이국적이기에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한적한 외곽으로 들어서니 소운하를 중심으로 좌우에 이층집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고요하면서도 평화롭게 아침을 맞고 있는 이곳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런 곳이라면 현지인들이 삶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아침 산책중인 노부부

 

똑같은 베네치아 본섬인데 이곳은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하루를 시작하는 현지인들의 생활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산책 중인 노부부의 뒤를 따라 아주 천천히 걸었다. 내가 보기에도 고령인 노부부였다. 마치 오늘 아침이 생의 마지막 아침인 것처럼 서로에게 의지한 체 한 걸음씩 걸으며 조용한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주택가 골목

 

베네치아에는 운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건축물 사이의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지만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도는 길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골목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현지인들의 삶이 녹아 있었다. 이런 골목을 걷는 나 자신이 좋았다.

 

 

 

 

 

어느새 도르소두로(DORSODURO)를 지났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열린 창문 창살 틈으로 실내를 바라봤다. 누군가 온 힘을 기울여 피아노를 쳤다. 무슨 곡인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와닿았다. 피아노 연주가 끝날 때까지 난 그렇게 서 있었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아주 멋진 음악회를 봤다.

 

아카데미 다리에서 바라본 대운하

 

관광객으로 붐비지 않는 베네치아 외곽은 내가 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곳이 많았다. 낡고 오래된 집이지만 각자의 개성이 가득한 실내장식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난 조용한 베네치아 골목을 걸으며 아침을 즐겼다. 한참이 지난 후에 대운하를 건넜다. 아카데미 다리를 지나 산마르코 광장으로 향했다. 나 스스로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곤돌라

 

소운하는 곤돌라가 쉴 새 없이 지나갔다. 방송에서 보던 그런 멋진 장면은 전혀 아니었다. 현실은 그늘이 전혀 없는 뜨거운 햇살 아래 곤돌라를 타야 했고 혼탁한 바닷물에 냄새까지 났다. 심지어는 좁은 운하에 여러 대의 곤돌라가 뒤섞여 난장판이 되었다. 곤돌라를 탄 사람들이 부럽기보다는 오히려 안쓰러워 보였다.

여행 버킷리스트처럼 일생에 한 번뿐이고 베네치아에 왔으니 꼭 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과감히 제외해도 될 그런 경험이지 않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곤돌라는 타는 사람보다 곤돌라는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즐거워했다.

 

산마르코 대성당
탄식의 다리
두칼레 궁전입구
리알토 다리

 

조금만 움직여도 사람끼리 부딪치게 되는 산마르코 광장은 도떼기시장처럼 북적였다.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라도 그렇지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있었다. 산마르코 대성당, 두칼레궁전, 탄식의 다리를 지나면서 사진만 대충 찍고 그곳을 벗어났다. 리알토 다리에 왔다. 유명한 다리라 그곳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다리 난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한참을 멈춰 있어야 했다.

 

베네치아 골목
베네치아 산타루치아역

 

난 북적임이 싫다. 여행지라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 있어야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리를 건너서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을 돌아다니면 이런 곳을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정오가 지나면서 뜨거운 햇살이 거리에 내리쬐었다. 건물 사이의 골목 그늘을 걸어 산타루치아역 맞은편 성당 계단에 앉았다.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무엇보다도 그늘이라 시원했다.

 

산타루치아역 맞은편 성당 계단

 

COOP에서 산 맥주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막 도착한 관광객들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나만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강렬한 햇빛을 피해 다양한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있었다. 그들도 맥주를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먹었다. 한낮에 베네치아를 걸어 다닌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었다.

 

한낮의 베네치아
소식당 ( 小食堂 )

 

한 시간이 지났다.

안 가본 골목길을 조금 더 돌아본 후 기차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왔다.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주변 식당을 검색하다가 소식당(小食堂)에 갔다. 베네치아 메스트레에는 중국식당이 많았다. 어제와는 다른 중국식당이지만 음식은 비슷했다. 한국어 메뉴판에 짬뽕이 있어 공깃밥과 함께 주문했다.

 

중국식 짬뽕

 

홍합과 조개가 들어갔다고 해서 짬뽕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맛이 났다. 맛이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아시아 음식이고 매콤한 면 요리라서 빵류보다는 좋았다. 칭다오 맥주를 마시며 다음에는 다른 중국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계꽃
야외 테라스에서 맥주한잔

 

어젯밤 파티가 열렸던 공원에 시계꽃이 반발했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른다더니 시계꽃을 보니 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여행을 시작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나라에 와 있다. 내일 베로나를 다녀오면 모레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로마로 가야 한다.

오늘도 파티가 열렸다. 주말이면 늘 이런 파티가 열리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만 젊었더라면 함께 이 밤을 지새울 테지만 그렇게 하기엔 너무 나이가 먹었다. 음악의 진동을 자장가 삼아 젊은 사람들보다 일찍 침대에 머리를 뉘었다.

새벽에 바라본 구름낀 아이거 북벽

 

늦은 밤까지 마신 포도주 때문에 술이 깨지 않았다.

새벽에 침대 밑으로 핸드폰이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벽 구석으로 떨어진 핸드폰을 손으로 끄집어내려고 한참을 부스럭거렸다. 공용객실(Dormitory)이라 불을 켤 수가 없었다. 도저히 꺼낼 수가 없어 손전등을 찾으려고 가방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열려있던 가방에서 포도주병이 떨어져 깨졌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부랴부랴 깨진 병 조각을 치웠고 바닥을 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핸드폰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한편의 코미디 영화를 나 홀로 찍었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흰 구름이 산을 집어삼켰다.

비가 내린 그린델발트의 새벽은 맑은 낮보다 주위 색감이 한층 짙어졌다. 주변 풍경을 다시 한번 두 눈에 넘치도록 담은 뒤 터미널로 향했다. 오늘도 오전 620분 첫차를 탔다. 56일 동안 절반을 첫차를 탔고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해 그린델발트를 떠났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기차를 갈아탔고 스피츠까지 왔다.

 

스피츠역에서 바라본 튠호수

 

 

 

 

아침식사

 

이탈리아 밀라노행 기차는 40여 분 후에 출발할 예정이다. 튠호수를 바라봤다. 산보다 구름이 낮게 내려앉은 에메랄드빛 호수가 내 마음을 헤아리는 듯 나를 진정시켜 주었다. 카페에서 커피와 이름 모를 파이를 사서 먹었다. 역에 있는 조그만 카페인데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쓴 커피와 달곰한 파이를 번갈아 가며 맛있게 먹었다.

 

밀라노행 기차
도모도쏠라 (Domodossola)

 

오전 85분 밀라노행 기차를 탔다.

기차의 의자 간격이 좁았다. 선반에 배낭을 넣을 수 없어 앞으로 끌어안고 자리에 앉았다. 기차는 스위스 지역을 달리다 도모도쏠라(Domodossola)에 직전에서 이탈리아로 진입했다. 갑자기 확 달라진 건축물들이 내가 지금 이탈리아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밀라노 중앙역

 

 

 

 

밀라노 중앙역 전광판

 

30여 분이나 연착해서 밀라노 중앙역에 도착했다. 밀라노 중앙역은 거대한 건축물 그 자체였고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만남의 장소였다. 어느 곳이나 사람들로 북적였고 불쾌하고 시끄러운 소리와 눅눅한 더위가 숨이 막힐 정도였다.

베네치아행 기차를 타야 할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전광판에 플랫폼 정보가 뜨지 않았다. 연착이 55분에서 40분으로 바뀌었는데도 플랫폼이 표시되지 않았다. 아무도 연착에 대해 역무원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내가 더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기차연착을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베네치아행 italo 기차
베네치아 메스트레역

 

혼돈의 도가니 속에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던 손이 저렸다. 정오 1235분 기차를 오후 130분에 탔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넓은 좌석에 콘센트, 에어컨이 가동되어 실내가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기차에서 이틀 후에 갈 베로나(Verona)Flixbus를 예약했다. 결국, 베네치아에는 예정시간보다 55분 늦게 도착했다.

 

Anda Venice 호스텔

 

여행 전 베네치아 메스트레(Mestre)역과 가까운 호스텔을 예약했다.

주택가 한편에 있는 호스텔은 아주 큰 건물이었고 그만큼 내부시설도 다양하고 좋았다. ‘호스텔이 이 정도로 좋다니.’ 배정받은 공용침실의 객실과 침대에 다시 한번 놀랐다. 통창으로 바라보이는 전망과 싱글침대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호스텔 앞 주택가
베네치아 메스트레 도심거리와 주택가

 

대충 짐 정리를 하고 주택가 골목을 걸었다. 모든 집의 창문에 한낮의 뜨거운 햇볕을 가리는 덮개 창문이 있었다. 여행 중 우리나라와 다른 점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을 난 무척이나 좋아하고 즐긴다. 주택가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거주하는 사람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들인 것 같았다.

구석진 골목에서 COOP을 발견했다. , 음료, 맥주, 샐러드, 요구르트 등을 샀는데 5유로도 안 나왔다. ‘어쩜, 이렇게 쌀까?’ 관광지를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가격이 반값 정도였다. 더더욱 스위스에 있다가 오니 물건값이 훨씬 저렴하게 느껴졌다.

 

식백미 ( 食百味 )

 

캔맥주를 마시며 골목을 걸었다. 우연히 발견한 한자를 보고 식당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산이 없던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름이 식백미(食百味)라는 중국 음식점이었고 식당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실내장식이 최신식이고 깨끗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메뉴판의 음식을 손으로 가리켰다. 밥과 매콤한 국물이 있는 면을 먹고 싶었다. 고수, , 매운 고추에 중국 간장을 넣은 소스를 만들어 면과 함께 먹었다. 비가 점점 세차게 내리듯 내 입에도 매콤함과 고수의 향이 가득 퍼졌다. 볶음밥도 수저로 중간중간 떠먹었다. ‘오늘 배불리 먹어보자처음엔 다 못 먹을 것 같았는데 매콤한 국물 때문인지 결국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때마침 식사가 끝났을 때 비도 멈췄다.

 

호스텔 앞 공원의 주말파티

 

호스텔로 돌아와 샤워하고 잠을 잤다.

이상한 진동과 소음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11시였다. 객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데 건물이 흔들렸다. 계단을 통해 로비로 내려왔다. 로비의 한쪽 공간이 나이트 장으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모든 숙박객과 허락된 일부 외부인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그런 광란의 파티장으로 변한 것이었다. 야외 테라스도 조용한 파티가 열렸지만 메스꺼운 냄새와 담배냄새가 섞여 도저히 내가 서 있을 수 없었다. ‘나도 이젠 늙었구나

호스텔 밖으로 나갔다. 호스텔 앞 공원에서도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포도주, 맥주 등을 마시면서 음식을 먹고 있었는데 호스텔처럼 시끄럽지는 않았다. 한쪽 구석에는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도 뛰어놓고 있었다.

금요일 밤이면 이런 파티들이 열리는가 보다. 잠깐 살펴본 늦은 밤 도로변은 어둠의 그림자가 엄습한 듯 파티하는 곳과 분위기가 달랐다. 왜 이탈리아에서 늦은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줄 이해가 되었다.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지인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고 자정 넘어 도착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부산스러운 소리를 귀로 흘려보내며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거 북벽
그린델발트의 아침
조식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다. 일어나는 시간은 비슷했지만, 오늘 일정이 크게 힘들지 않기에 산책도 하고 조식도 느긋하게 먹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숙박하면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이 떠나고 또 새롭게 찾아들었다. 이제는 그런 감정에 무뎌질 수 있지만, 사람인지라 익숙한 사람들이 사라지면 섭섭한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오늘 아침에 텍사스 출신의 두 젊은이가 떠났다. 언어가 달라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사흘 동안 한방에서 함께 잤다는 것만으로 아쉬운 감정이 일었다.

 

마을 길을 걷다

 

다른 사람들이 조식을 먹는 동안 나는 등산을 준비했다.

오후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내 계획보다 일찍 산을 올랐다. 그린델발트 풍경은 이제 익숙했다. 마을 길을 걷는 것이 산을 오르는 것보다 힘들게 느껴졌다. 워낙 급경사지에 형성된 마을이라 집들은 드문드문 떨어진 경사지에 있었다.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내가 이해할 수도 없을 만큼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것들이 존재하는 공간이었다.

 

안내문구
그린델발트
아이거 북벽

 

아이거 트레일(Eiger Trail)까지 가기도 쉽지 않았다.

구글 지도는 정확하게 내 위치를 표시해주지 않았다. 심지에 길 안내판에 GPS가 정확하지 않다는 문구가 있었다. 길을 오르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그린델발트의 모습은 같으면서도 조금씩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른 아침에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 기분은 신선한 공기의 상쾌함만큼이나 나를 자극했다.

 

식수대
산악 기차

 

 

 

 

빙하가 녹은 물을 식수로 이용하는 식수대를 볼 때마다 반갑고 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쉼터 같은 장소였다. 아이거 북벽은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가깝게 바라보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방목중인 소

 

점점 아이거 트레일에 가까워질수록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워낭소리가 익숙한 풍경처럼 들려왔다. 길을 가로막고 있는 소와 가까이서 마주했을 때 우리네 농촌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구나하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곳 사람들이 사는 냄새는 소똥의 냄새처럼 그렇게 역하지도 그렇다고 구수하지도 않은 단순한 삶의 냄새였다.

 

아이거 트레일 시점
아이거 트레일

 

 

 

 

이정표가 있었다.

그곳부터 아이거 트레일이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경사진 마을 길을 힘겹게 올라왔는데 그 길들은 아직 아이거 트레일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느낀 허무함에 피로가 나를 엄습했다. 아이거 트레일에 들어선 순간 내 몸이 반응했다. 혈관을 흐르는 피는 뜨거워졌고, 숨이 가빴던 호흡은 한결 안정되었고, 무겁게 느껴졌던 발걸음은 가벼웠다. 꿈에 그리던 곳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힘이 나도 모르게 생겼다.

 

폭포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이거 북벽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대한 암벽의 형체는 무서울 정도로 나를 공포감에 빠져들게 했다. 급경사지에 작은 암석들이 바닥에 깔린 등산로는 한걸음 걷기조차 쉽지 않았다. 미끄러지듯 신발이 아래로 밀려났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극한 상황에 처해야 발걸음을 멈췄다. 쉬는 동안 물을 마시고 호흡을 진정시켰다.

 

아이거 트레일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가 창피했던지 평소엔 안 그러는데 오늘 유독 힘드네.’라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로 내 눈에 들어왔다. 아이거산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마치 나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거산과 내가 교감하는 것 같았다.

 

아이거 트레일 종점

 

 

 

 

해발고도로는 아이거산보다 더 높은 곳을 여러 번 가봤지만, 아이거산만큼 나를 압도했던 산은 한 번도 없었다. 설산의 빙하가 녹아 폭포로 변한 곳도 지나고, 만년설이 있는 지역도 지나고, 석벽의 암반 구간도 지났다. 아이거산은 자신의 위용을 그런 형태로 뽐내고 있었다. 1시간 30분 만에 아이거 트레일을 완주했다.

 

아이거 북벽과 아이거글래처
클라이네 샤이덱
암벽체험

 

케이블카나 기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나름대로 여행을 즐기고 있겠지만 내 눈에 보이는 모습은 뭔가에 쫓기는 모습이었다. 한마디로 여유로운 행동은 아니었다.

 

아이거글레처
융프라우산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내려가는 길
산악 기차
사랑의 불시착 상징물

 

 

아이거글레처(Eigergletscher)를 갔다가 클라이네 샤이덱(Kleine Scheidegg)으로 내려갔다. 그곳에 사랑의 불시착촬영지라는 상징물이 있었다. 많은 외국인이 그 상징물과 사진을 찍었는데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클라이네 샤이덱

 

흑맥주를 마셨다. 눈앞에 아이거산, 묀히(Monch), 융프라우산, 글래처호른(Gletscherhorn) 등의 설산이 있었다. 맑은 하늘에 날카로운 암벽의 설산들이 그림을 그리듯 내 눈에 새겨졌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자연이 허락하는 선에서 잠시 오를 수 있다라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없다.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이 아무나,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곳처럼 인식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더더욱 편하게 융프라우에 올라가기 싫었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그린델발트로 향하는 하산길

 

하산을 시작했다.

오후 3시경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내 걸음을 재촉하게 했다. 여전히 하늘은 맑고 햇살은 뜨거웠다. 하산길에 보이는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자연의 모습이었다.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삶은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이었다. 자연을 소중히 여기며 보전하려는 모습이 내게는 크게 인상적이었다.

 

점심식사
비오는 그린델발트

 

대지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비를 맞지 않고 아이거 롯지로 돌아왔다. 치킨커리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늦은 점심이지만 이렇게 점심을 먹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늘어놓았던 짐들을 정리하여 배낭에 넣었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있는데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COOP에 갔다. 매일 한 병씩 마셨던 포도주를 2병이나 샀다. 한 병은 오늘 저녁에 마시고 또 다른 한 병은 이탈리아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날 참사를 알지 못한 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고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다. 원래 여행기는 다음날 쓰는데 오늘만큼은 왠지 지금 쓰고 싶었다. 스위스에서 마지막 날 밤이라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내일은 맑은 새벽이 찾아오길 손꼽아 기대해 본다.

이른 아침의 아이거 북벽
그린델발트 터미널

 

체르마트 가는 날이 밝았다.

새벽에 홀로 깨어 아이거 북벽을 바라봤다. 거대한 암벽의 웅장함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늘도 첫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 도시락을 받아들고 터미널로 향했다. 터미널 내의 모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조용한 터미널에 나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누군가 불쑥 나타났다.

 

스피치역

 

사흘 동안 잠깐씩 얼굴을 마주하고 인사 정도만 나눈 30대 한국인 처자였다. 오늘 취리히에서 런던으로 간다고 했다. 새벽 첫 기차라서 탑승객도 없고 둘이 멋쩍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주체이고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나이 또래에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때론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차가 스피치(Spiez)에 도착한 후에서야 이야기는 끝이 났다.

 

 

 

 

체르마트역

 

피스프(Visp)에서 다시 체르마트(Zermatt)행 기차로 갈아탄 후에야 아침을 먹었다. 어제도 마신 페트병에 들어있는 음료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협곡 풍경을 두 눈에 담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협곡을 달린 기차는 한 시간이 지난 후 체르마트역에 도착했다.

 

체르마트 도심
마터호른

 

스위스는 화장실이 무료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다녀왔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거지만 이제까지 거쳐온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 거의 모든 유럽국가는 돈을 내고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얼마나 편안하고 좋은가?’

역을 벗어나 COOP으로 갔고 맥주를 샀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마터호른이 잘 보이는 장소에서 마실 생각이다. 체르마트 시내에서도 마터호른이 보였다. 정상부에 구름이 있어 완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처음 본 마터호른의 모습이라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수네가로 가는 길
체르마트 시내와 마터호른

 

수네가(Sunnega)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로 갔다.

큰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은 보았는데 어디까지 가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나와 방향은 같은데 저 무거운 배낭을 메고 급경사지 산을 오를 수 있을는지 의문이 들었다. 도심 언덕을 올랐다. 체르마트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터호른은 높은 곳에 오를수록 더 잘 보였지만 여전히 구름이 정상부를 감싸고 있었다.

 

등산로 초입
쉼터

 

 

 

 

언덕을 지나 숲길로 들어섰다. 오르막이지만 비교적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15분을 올랐을 때 의자를 발견했고 그 앞에 커다란 나무 십자가가 있었다. 십자가 뒤로 마터호른이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을 몰래 쳐다보는 것처럼 마터호른을 흘깃 쳐다봤다.

 

오두막
임도
스키장

 

다시 산행이 시작되었다. 숲속에 넓은 분지가 있었고 조그만 오두막 옆에 의자가 있었다. 의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었다. ‘Great see you(반가워요).’ 바로 위쪽 이정표에는 수네가까지 1시간 50분이 걸린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한 시간이면 올라가겠는걸. 임도를 만난 후 바로 숲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힘겹게 오르막을 올라 숲길을 벗어나니 탁 트인 공간이 내 앞에 펼쳐졌다.

 

 

 

 

 

 

스키장이었다. 구글 지도로 확인해 보니 스키장 슬로프로 올라가면 바로 수네가였다. 급경사지 슬로프를 올라가다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을 만났다. 비수기의 스키장이 이렇게 이용되고 있었다.

 

마터호른
스키장 슬로프에서 바라본 마터호른과 주변설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종아리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내 몸을 조여왔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마터호른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전히 구름은 움직이지 않았다. 고개를 뒤로 돌렸다. 눈 앞에 펼쳐진 설산은 또 다른 감동을 나에게 주었다. 힘겹게 수네가에 도착했을 때 마터호른이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날씨도 맑고 바라도 시원하게 부는데 구름은 왜 움직이지 않고 훼방을 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네가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사진 한컷

 

수네가에서 마터호른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셨다.

역시 첫 모금은 예술이었다. 수네가는 5대 호수 트레일이 있는 곳이고 바로 아래에 레이호수(Leisee)가 있었다. 호숫가 의자에서 마터호른을 바라보고 계신 사람들을 봤다. 저 사람들도 구름이 원망스럽겠지. 한적한 곳에서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았다.

 

고산할미꽃
유럽할미꽃
레이호수

 

 

 

 

호수 주변에는 많은 야생화가 피어있었다. 나는 등나무에 앉아 음악을 들었다. 눈은 마터호른을 바라봤고 입은 맥주를 마셨다. 저 구름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보자.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났지만 구름은 변함없이 마터호른을 감싸고 있었다. 호수에 발을 담그고 개들이 뛰노는 모습도 바라보면서 호수에 조금 더 머물렀다. 아무래도 이번엔 못 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급경사지 등산로
체르마트 도심언덕에서 바라본 마터호른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을 했다. 올라왔던 곳이 아닌 직선으로 내려가는 급경사지로 내려갔다. 멈춰설 수 없을 정도로 서 있으면 몸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아무런 사고 없이 30분 만에 체르마트 도심지로 내려왔다. 언덕을 내려오기 전 다시 한번 마터호른을 쳐다봤다. 더 많은 구름이 마터호른을 에워싸고 있었다.

 

체르마트 산악기차
체르마트 도심
마차

 

체르마트 시내는 쾌적했다. 전동차 이외에는 어떤 화석연료 차량도 운행할 수 없었다. 현지인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체르마트 도심 거리는 다양한 외국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모든 걸 내려놓고 기차를 탔다. 아침에 탔던 역순으로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아레강

 

 

 

 

카지노
Hoheweg
인터라켄 동역
저녁식사

 

인터라켄을 걸었다.

서역에서 내린 후 도심지와 아레강을 걸었다. 빙하가 녹은 물인 에메랄드빛의 아레강은 동네 꼬마들의 수영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수영하기 딱 좋은 날씨였다. 수영복만 입었어도 나도 뛰어들었을 텐데. 한동안 의자에 앉아 아레강을 바라봤다.

동역까지 걸어온 후 COOP에서 포도주와 통닭을 샀다. 다시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로 돌아온 후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합류했고 늦은 시각까지 대화는 이어졌다. 이곳에서의 저녁은 늘 만찬이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더 좋다.

그린델발트 터미널

 

알람이 울렸다.

이런. 언제나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깼는데, 재빨리 알람 해제를 한 후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 서둘러 객실 밖으로 나와 양치와 세수를 했다. 롯지나 호스텔 공용침실(Dormitory)의 단점은 이런 점일 것이다. 이른 새벽에 움직여야 할 때 소란스러운 부스럭거림이 언제나 발생한다. 미리 부탁한 아침 도시락을 받고 롯지를 나섰다. 오늘도 고요함이 내 혈관을 통해 몸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브리엔츠 호수
사르넨(Sarnen) 호수

 

그린델발트 터미널에서 620분 첫 기차를 탔다.

엊그저께 올라왔던 그 길을 기차는 다시 내려갔다. 인터라켄 동역에서 다시 루체른행 기차로 갈아탔다. 오른쪽 차창으로 보이는 에메랄드빛 브리엔츠 호수에 낮게 깔린 구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기차가 움직일 때마다 새로운 풍경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사진을 찍으려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 얻어지는 성과물은 형편없었다.

 

루체른역
루체른 선착장
배의 엔진

 

오전 9시가 전에 루체른에 도착했다.

루체른 역은 매우 혼잡했다. 입구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니 바로 앞이 유람선 선착장이 있었다. 표 검사를 하지 않아 그냥 배에 탑승했다. 배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2층은 일등석이라 올라갈 수 없었고 배 엔진이 훤히 보이는 중앙 나무의자에 앉았다. 견학이라도 가는지 초등학교 아이들과 중학교 학생들이 많았고 그만큼 어수선하고 시끄러웠다. 배는 언제 출발했는지 엔진이 작동하면서 큰 소음을 냈다.

 

베기스 (Weggis)

 

 

 

 

배는 호수를 가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배가 베기스(Weggis)에 도착했을 때 이 혼잡에서 벗어나려고 무작정 배에서 내렸다. 배는 다시 비츠나우(Vitznau)로 출발했고 나는 그 모습을 선착장에서 바라보았다.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갈 때 비츠나우에서 다시 타야 할 테니까. 지금은 잠시 이른 이별을 했을 뿐이었다.

 

케이블카 탑승장

 

 

 

 

베기스는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도심 거리를 걸어 리기 칼트발드(Gigi Kaltbad)행 케이블카 탑승장까지 왔다. 그러고 보니 배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와 있었다. 잠시 탑승 차례를 기다린 후 미국에서 온 대학생들, 스위스 초등학생들과 함께 케이블카를 탔다. 5분여간의 케이블카 탑승은 초등학생들의 계속되는 비명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산악기차
추크호수 (Zugersee) 와 도심지
철길 옆 트레일

 

케이블카에서 내린 후 나는 걷기 시작했다. 산악기차를 타면 손쉽게 리기산에 오르겠지만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오르막이라 발이 무겁게 느껴졌다. 어제 피르스트를 다녀온 후 완전히 몸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다.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니 탁 트인 풍경 속에 철길 옆으로 길이 시작되었다. 추크호수(Zugersee)와 도심지가 눈에 보였는데 미세먼지 때문인지 희뿌연 하게 보였다.

 

철길 옆 트레일
리기산

 

리기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바로 옆이 철길인데도 아무런 안전시설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나의 이목을 끌었다. 우리나라는 중대재해법 때문에 철길 옆 걷는 길들이 폐쇄되고 있는데 말이다. 혼자서, 부부끼리, 때론 단체로 길을 걷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철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리기산이 눈에 들어왔다. 지그재그 오르막을 힘겹게 올랐더니 시원한 바람이 내 젖은 옷을 말려줬다.

 

리기산 정상
알프스 설산
리기산 전망대
산악기차
방목중인 소들

 

저 멀리 알프스 설산들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제 피르스트에서 엄청난 경험 때문에 리기산이 평범하게 느껴졌다. ‘이게 뭐야? 겨우 이 정도 풍경인데 다들 그렇게 좋다고 말했나?’ 사람 마음이 이럴 때 보면 참으로 간사하다.

리기산 정상 주위를 돌면서 주변 풍경을 바라봤다. 알프스 설산에 감동하는 다른 사람들을 뒤로하고 12시에 출발하는 산악기차를 타고 비츠나우로 내려왔다.

 

비츠나우 선착장
유람선

 

유람선을 탔다. 배는 아침에 탔던 배보다는 작았다. 배에 앉을 자리는 없었고 그냥 한 시간가량을 서서 루체른으로 갔다. 다행인 것은 멋진 장면을 목격해서 사진을 찍느라 그럭저럭 시간을 잘 보냈다.

 

카펠교
빈사의 사자상

 

햇살이 뜨거웠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카펠교로 향했다. 1,300년대 목조다리에 들어섰는데 17세기 미술품으로 장식된 대들보와 석조로 만든 물의 탑이 눈에 들어왔다. 루체른 하면 카펠교를 떠올릴 만큼 대표적인 상징물이지만 나는 그저 그늘이라 좋았다.

빈사의 사자상으로 가면서 COOP에서 맥주를 샀다. 사자상 주변은 복원작업 중이었다. 사자상이 보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그래, 이 맛이지!’

 

무제크 성벽
루체른 도심, 로이스강

 

 

 

 

카펠교

 

다시 무제크 성벽까지 걸었다. 한낮에 도심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무제크 성벽은 오래된 성벽이었고 망루에도 오를 수도 있었지만, 창문을 모두 막아놓아 비지땀이 쏟아졌다. ‘왜 창문은 모두 막아놓은 거야? 더워 죽겠네.’ 투명한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로이스강을 건너 도심을 걸었다.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고 사진을 찍으면서 다시 카펠교를 지나 루체른역으로 왔다.

 

루체른 기차역
브리엔츠 호수

 

인터라켄행 기차를 탔다.

맥주를 마신 후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 잠에서 깨었을 때는 브리엔츠였는데 차창으로 비가 내렸다. 오후가 되면 비가 내리고 한두 시간 지나면 또다시 해가 떴다. 브리엔츠 호수를 보니 수영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기차가 인터라켄에 도착했을 때 비는 폭우로 바꿨었다. 인터라켄 여행을 내일로 미루고 그린델발트행 기차로 바로 갈아탔다.

 

저녁식사
아이거 북벽

 

오늘은 밥을 먹을 생각이다.

COOP에서 치킨커리, 라면, 맥주, 포도주를 샀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전자레인지에서 4분간 데운 치킨커리의 냄새가 내 식욕을 자극했다. 포도주를 마시면서 라면과 치킨커리를 먹었다. 식사하면서 지인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보냈다.

갑자기 롯지의 마스코트 검은 고양이가 내 곁에 앉았다. 고양이가 매개체가 되어 여러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술자리가 벌어졌다. 홍콩, 폴란드, 한국인들과 영어와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11시쯤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전날의 용사들(같은 객실 미국인 3인방)이 술을 마시고 있어 다시 그들과 합류했다. 오늘 무엇을 했고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남은 술을 다 마실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렇게 긴 하루를 마무리했다.

새벽에 바라본 아이거 북벽
조식과 커피한잔

 

스위스에서의 첫날이 밝았다.

아이거 북벽이 바라다보이는 그린델발트 아이거 롯지에서 새벽에 눈을 떴다. 조용한 새벽을 혼자 다 즐기는 동안 조식 시간이 되었다. 뷔페식 조식은 빵, 샐러드, 치즈, , 시리얼, 과일, 음료, 커피 등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후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까지 즐겼다.

 

그린델발트 시내로 가는 길
식수대
그린델발트 시내에서 바라본 풍경

 

오전 730분경 피르스트(First)를 향해 출발했다.

그린델발트까지는 마을 길을 지나는 오르막이었다. 길가의 식수대에서 물을 담은 후 도로의 인도를 따라 계속 걸었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한 폭의 풍경화가 펼쳐졌다. 거리가 너무 조용해서 건물에 사람이 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린델발트 시내에 도착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1

 

이정표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섰고 본격적인 피르스트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오르막 경사가 급했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차올랐던 숨은 주변 풍경이 내게 주는 놀라움으로 금방 상쇄되곤 했다.

대부분 사람이 케이블카를 타고 피르스트를 올랐다. 그들은 시간을 돈으로 바꾼 것이고 나는 오늘 하루를 오롯이 피르스트에 투자하기로 했기에 자연을 몸으로 느끼며 걷고 있었다. 머리 위로 케이블카가 지나가고 만년설을 품고 있는 해발 4,048mGross Fiescherhorn이 알프스산맥 사이에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2

 

계속되는 오르막길이 나를 지치게 했지만, 고개만 돌리면 그 힘듦을 잊게 만드는 자연이 만들어낸 절경이 있기에 힘을 더 낼 수 있었다. 길은 케이블카를 중심으로 지그재그로 올라가고 있었다. 고도가 점점 높아질수록 더 뜨겁게 내리쬐는 아침 햇살에 그늘이 필요했다. 케이블카가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가 생겨 나에게 아주 짧은 시간이나마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고개를 숙였고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는 고개를 쳐들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3

 

절반쯤 올라온 것 같았다.

조그만 호수를 지나 아주 짧은 평탄구간을 걸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패러글라이딩이 보였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의 쾌감을 알기에 그들의 오늘 하루가 최고의 날이 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길을 돌아가는 게 싫어서 샛길로 접어들었다. 거리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경사가 급하다는 의미다. 이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발산되었다. ‘. 이쯤이야 금방 올라가지. 헉헉. 죽겠다.’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었고 얼굴을 흐르는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가웠다. 저 멀리 폭포가 보였다. 나에게 물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식수대에서 세수하고 물을 마셨다. ‘. 살 것 같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4

 

똑같은 풍경이지만 보는 각도가 다르니 새롭게 느껴졌다. 내 발걸음은 저절로 멈췄고 눈은 그 풍경을 바라보게 되었다. ‘너무 좋다.’ 이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길가에 핀 큰금매화 군락지가 지친 나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설산과 노란 꽃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빠져 잠시 걸음을 멈췄다. 피르스트가 눈에 보였지만 아직도 남은 거리는 1.5km였다. 눈에 보이는데 길을 돌아서 가야 하니 몸은 더 고대고 마음은 착잡했다.

 

피르스트 올라가는 길5

 

이번에도 샛길로 들어섰다. 뜨거운 햇살은 나를 말려 죽이려는 듯 내리쬐었고 구름은 그런 햇살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드디어 해발 2,168m 피르스트 케이블카 종점에 올라섰다. 아주 힘들게 올라왔지만, 너무 놀라운 신세계를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안나푸르나(ABC)을 포함해 여러 번 외국을 다녀봤지만 피르스트만큼 나에게 찐한 여운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 (First Cliff Walk)
알프스 산맥들
Bergrestaurant First

 

피르스트 클리프 워크(First Cliff Walk)를 걸어 해발 2,200mBergrestaurant First에서 맥주를 마셨다. 나에게 주는 특별한 보상이었다. 언제나 맥주는 첫 모금이 가장 맛있었다. 물론 이곳에서의 맥주 맛은 주변 풍경이 더해져 훨씬 더 풍미가 넘쳤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 호수가는 길

 

꼭 가보고 싶었던 바흐알프 호수(Bachalpsee)로 향했다. 그곳까지도 먼 거리지만 충분히 다리쉼을 했기에 천천히 움직였다. 설산은 보는 위치가 달라져도 그 매력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도 그저 얼굴에 울음 꽃이 피었다. 그렇게 쉬다 걷기를 반복하다 바흐알프 호수에 도착했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

 

 

 

 

빙하가 아직도 녹지 않고 위쪽 호수에 떠 있었다.

아래쪽 호수에는 Wetterhorn(3,692m)Schreckhorn(4,042m)의 설산 풍경이 호수에 비추어져 있었는데 물결의 출렁거림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았다. 호수와 설산이 바라다보이는 곳에 앉아 셀카봉을 설치해두고 앉아 있었다. 눈은 연신 호수를 바라보았지만 입은 포도, 사과 등 과일을 먹었다.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오면 언제든 사진을 찍을 생각으로 만발의 준비를 했지만 나에게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큰금매화
애기동국(유럽데이지)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에서 하산하는 길1

 

1시간이 지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산을 타는 사람이 가진 직감으로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야생화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호수 아래 협곡으로 내려갔다. 길은 엉망진창이지만 설산과는 또 다른 풍경이기에 내 흥미를 끄는데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눈앞의 설산과 물길이 자연의 신비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늘엔 여전히 패러글라이딩하는 사람들이 허공을 맴돌았고 하산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엔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흐알프 호수 (Bachalpsee)에서 하산하는 길2

 

걸어도 걸어도 길은 끝나지 않았다. 임도와 숲길을 반복해서 걷다보니 아침에 피르스트를 올라갈 때 지나쳤던 갈림길에 도착했다. ‘.’ 한번 지나갔던 길이라 마음이 훨씬 편안해졌다. 그렇게 30분을 더 내려갔다. 아이거 롯지에 도착했을 때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비를 맞지는 않았지만 피르스트에서 조금 더 지체했다면 비를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녁식사
같은 객실 미국인 친구들과 파티

 

샤워하고 난 후 COOP을 다녀왔다.

역시 스위스에서는 우산보다 우비가 감성적이었다. 맥주, 포도주, 라면을 샀다. 비가 오니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다. 라면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셨다. 매콤한 국물이 내 몸을 전율하게 했다. 남은 오후 시간은 포도주를 마시며 음악을 들었다. 비가 오는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며 소파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취했다.

저녁이 되어 남은 포도주를 다 마실 때까지 같은 객실 미국인 친구들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회화를 더 열심히 해야지라는 반성을 남긴 체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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